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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회사에서 돌아오면 집 안에서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보니 평일에는 간단하게 밥을 먹고 포스팅을 한 후 자게된다. 은비와도 평일에는 지내는 시간이 적고 고양이의 경우 자는 시간이 하루 10~15시간이며 피곤하여 많이 자는 경우 20시간도 자곤 한다. 그렇다보니 평일에 집에 도착하면 은비랑 지내는 시간은 기껏해야 1~2시간 정도가 전부이다. 


유일하게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이 가장 길다보니 우리가족은 주말에 드라마를 몰아서 보곤한다. 요즘 드라마 중 '용팔이'라는 의학드라마가 가장 재밌다보니 우리가족은 용팔이를 1화부터 끝까지 보았다. 은비도 옆으로 와서 같이 가족들과 티비를 시청하였다.



어릴때만 해도 생각없이 돌격하는 은비 때문에 온 집안은 항상 난리가 났었고 공격성이 강했던 은비는 집사와 가족들을 시도때도 없이 물어댔다. 어린 고양이라고 얕보았던 집사의 팔에는 매일매일 구멍이 뚫렸다. 이 때 만해도 은비는 야생성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집사는 그저 단순한 지능을 가진 돌격 고양이로만 생각했다.


티비에서 움직임이 보이면 티비에 머리를 박으며 발로 티비를 벅벅 긁어대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의 은비는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은비는 앉은 자세에서 상당히 오랜시간 티비를 시청한다. 앉아서 집중하여 티비를 응시하기 때문에 간혹 티비를 보다가 앉아서 졸곤한다. 원숭이도 사람과 같이 지내면 이것저것 배우고 터득하는게 있듯이 고양이도 사람과 지내면서 배워가는게 있나보다. 이렇게 티비를 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예전에 티비를 보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께서는 티비를 보실 때 졸다가 앉은 채로 주무시곤 하셨다.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고 티비의 전원을 끄려고 하면 아직 보고 있다면서 끄지 말라고 하시던 그때의 느낌을 은비에게서 느꼈다. 드라마가 재밌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유심히 보는걸 보면 관심은 있는 듯 하다. 



허리도 거의 일자에 가까운 자세로 앉아있는게 정말 신기하다. 집사는 앉아 있을 때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앉는 편인데 마치 집사에게 내가 앉는 걸 보고 좀 배우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꼿꼿이 허리를 쫙 펴고 앉아서 한 곳을 응시한다는게 쉽지 않을텐데 이런 자세로 상당히 오랜시간 있는다.  



고양이의 식빵자세, 꾹꾹이 등의 행동 양식에 대한 지식은 널리 알려져있지만 고양이가 앉는 것에 대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진게 없다. 4족 보행을 하는 고양이가 굳이 이런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앉아있는 이유를 추측해볼 때 2가지의 원인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


첫째로는 고양이가 방광염이나 변비를 심하게 앓았을 경우 앉는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은비의 경우 스투르바이트 결석이 생겨 방광염을 앓았기 때문에 소변을 볼 시 이물감이 생기곤 했다. 제대로 된 소변을 볼 수 없어 생식기부분이 따갑고 아프기 때문에 고양이는 생식기부분을 핥기 위해 앉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변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항문 주위에 변이 묻어서 떨어지지 않거나 항문에 이물감이 있기 때문에 항문을 그루밍하게 된다. 이 그루밍을 할 때의 자세가 앉는 자세와 매우 유사하게 되기 때문에 고양이는 앉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두번째 이유로는 사람과의 오랜 소통으로 인한 앉는 자세의 배움이다. 간혹 고양이와 강아지를 비교하며 강아지는 말을 잘 듣고 명령대로 행동하여 고양이보다 똑똑하다라고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고양이와 강아지의 배움에는 차이가 있다. 강아지의 경우 반복된 환경을 조성하여 특정 행동을 했을 시 칭찬 혹은 훈계를 반복하여 지식을 배운다. 또한 위계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리더의 명령에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경우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집사는 그저 좋은 친구이자 어미와 새끼의 관계일 뿐이다. 집사로부터 반복학습으로의 배움이 아닌 고양이가 스스로 보고 행동한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한다고 보면 되겠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게 편하다고 생각하면 고양이는 그 것을 습관화한다. 그래서 앉는 게 편하다고 느껴지면 그 행동을 일상에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은비의 경우 두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앉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방광염을 앓았으며 앉는 자세가 편한 지 오래도록 앉아있는다. 집사가 유심히 보며 관심을 가지니 집사를 처다보며 썩소를 지어준다. 사람의 얼굴의 표정변화를 보고 배우는 것인지 은비도 다양한 표정을 집사에게 선사하며 공포를 준다.


 


고양이는 도도해보인다는 표현을 사람들은 자주하지만 고양이도 생각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또한, 표정에서 느껴지는 기분도 생각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고양이가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 지 우울한지 얼굴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집사가 계속 귀찮게 구니 은비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뒤에서 보는 것도 찍어보고 싶었지만 은비의 표정으로 볼 때 '집사야 나 드라마보니 이제 귀찮게 하지마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포스팅을 하거나 집에서 회사의 남은 작업을 할 때면 은비는 노트북 위에 올라와 집사가 하는 일을 유심히 보곤 한다. 고양이는 높은 곳을 좋아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랍장 위에 있는 따뜻한 노트북은 은비에게 안성맞춤인가보다.



처음에 은비가 우리집으로 왔을 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고 눈을 처다보기만해도 '하악!' 뱀처럼 소리를 내며 공격을 하였다. 그래서 동물들의 눈에 대한 궁금증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찾아 보았다. 동물들은 기본적으로 눈을 깜빡이지 앉고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면 '너를 공격하겠다'라는 표현이라고 한다. 


야생에 있는 고양이들은 이와같이 느끼기 때문에 카메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을 찍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동물들을 포획 시 눈을 가리는 이유도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동물들도 눈을 마주친다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야생에서의 눈 마주침은 '너를 공격하겠다'라는 표현이지만 사람과의 삶에서는 '너를 좋아해'라는 표현이 될 수 있다.



은비는 집사와 오랜기간 함께하다보니 카메라의 렌즈와 집사와의 오랜 눈마주침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처다본다. 고양이가 눈 마주침에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면 이는 '반갑다'라는 표현이며 집사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은비도 집사를 신뢰하는 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반겨주었다. 


이처럼 야생에서의 표현언어는 사람과 함께하면서 차즘 변해가고 동물들도 새롭게 사람과의 표현언어를 배워간다. 알게모르게 동물들도 점점 사람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간혹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동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필자도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도하고 외롭지않은 독고다이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양이도 사람처럼 외로움을 느끼며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밖으로 나가려는데 은비가 대문 앞에 들어누워 나가지 말라고 시위를 하고 있다. 가족들이 한두명 나가면 나가는 걸 지켜보곤 하지만 전부가 나가려고 하면 이렇게 배를 보이며 나가지 말라고 막아선다.



왼쪽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드러누워 방해하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려면 오른쪽으로 드러누워 은비의 철벽수비는 상당했다. 고양이의 배부분은 약점으로 가득한 치명적인 곳이다. 야생에서 배를 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이 여기 있으니 나를 어서 죽여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하는 고양이가 이렇게 배를 보인다는 것은 '너를 신뢰한다'라는 의미와 같다.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은비가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열심히 배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은비가 신기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평일 집사와의 짧은 시간에도 은비는 항상 나에게 관심을 사기 위해 자기전 시간동안 하루종일 집사를 따라다닌다. 주말에라도 은비와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겠다.



여담


반려동물들은 이처럼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열심히 배워나가고 관심을 사기위해 열심히 표현한다. 가족원이 되기 위해 사람이 되어가는 반려동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준다는 것은 서로가 소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편으로 이렇게 소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반려동물들을 버리는 사람들은 점점 짐승이 되어가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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