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 물이 닿는 건 물론이고 물을 잘 안 마신다는 점도 고양이가 물을 싫어한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한번 씻기는데 집사는 많은 고생을 하게 된다. 만약 씻길 때 얌전히 있는 고양이라면 그 집사는 천사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집 은비는 안타깝게도 악마의 저주를 뿜어내며 집사를 고생하게 만든다.
이렇게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를 씻길 필요가 있을까? 고양이는 모든 반려동물 중 가장 냄새가 나지 않는 동물에 속한다. 이는 고양이가 자신의 혀로 털을 핥아대는 '그루밍'을 하기 때문이다. 그루밍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냄새를 없애고 사냥감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위해 한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야생에서의 냄새는 매우 중요한 단서이다. 냄새가 나는 동물은 쉽게 간파 당할 수 있으며 고양이에게 냄새가 난다는 것은 사냥감에게 '내가 여기 있으니 어서 도망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고양이의 그루밍은 생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가까이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한, 고양이의 침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기 때문에 털에 달라붙은 각질이나 오물이 제거가 된다.
이를 토대로 볼 때 고양이는 씻길 필요가 전혀 없는 동물이다. 고양이를 자주 씻기면 오히려 피부가 약해지며 씻은 이후 몸 전체를 그루밍하기 때문에 물에 젖어 무거워진 죽은 털들은 몽땅 고양이의 입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주 씻기면 스트레스, 헤어볼 횟수 증가로 인한 식도염, 피부가 건조해지고 약화됨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언제 씻기는 게 좋을까? 고양이를 씻겨야 되는 상황은 반드시 발생한다. 고양이는 대체로 구석진 곳을 좋아한다. 상자, 장롱, 서랍장 등 문 만 열리거나 틈이 보이면 그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구석진 곳은 먼지가 매우 많으며 집사가 청소를 미쳐 해두지 않은 곳까지 탐험을 하면 온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오는 고양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먼지가 많은 곳은 진드기가 가득가득하기 때문에 고양이의 털에 찰싹 달라붙는다. 곰팡이도 구석진 곳에 많이 있기 때문에 역시 털에 달라붙는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고양이는 털을 핥아 냄새를 제거하는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구석진 곳을 탐험 후 자신에 털에 붙은 진드기와 곰팡이를 혀로 핥아 열심히 먹게 된다.
우리집 은비는 가족원 중 한명이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경우 쫓아가는 버릇이 있다. 현관 문을 열자마자 현관 앞에 드러누워 배를 보이며 나가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은비의 몸에는 밖에 있는 먼지가 가득 달라 붙었다. 이렇게 고양이가 구석진 곳이나 먼지, 곰팡이 등이 많은 곳에 갔을 때는 반드시 씻겨주어야 한다. 고양이에게 목욕이란 '선택'이 아닌 '강요'이다.
집사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우리는 고양이님들이 먼지구더기를 온 몸에 묻히셨으니 안 좋은 걸 드시기 전에 씻겨드려야 된다. 고양이를 씻기기 위해서는 몇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는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이 고여있는 곳이 보인다면 매우 불안해 한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싫어하는 벌레가 가득 모여있는 구멍이 눈 앞에 보이고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를 씻기려면 샤워기를 이용해 얼굴이 물에 보이지 않게 물을 뿌려주는게 좋다. 목 뒤쪽부터 천천히 몸쪽으로 구석구석 물을 뿌려준다. 샤워기를 털에 밀착시켜 준 다음 물을 뿌리면 속 안까지 털이 젖기 때문에 더 빠르게 씻겨줄 수 있다. 물의 온도는 손 등으로 따뜻할 정도로만 유지해주면 되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집고양이의 경우 집 안에 따뜻한 곳이 많기 때문에 목욕 한 번 했다고 감기에 걸릴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물에 충분히 적셔진 털에 고양이용 샴푸를 풀어 마사지하듯이 거품을 내준다. 샴푸의 경우 굳이 고양이용 샴푸를 쓸 필요는 없으며 베이비 샴푸 등 순한 샴푸를 활용해도 무관하다. 구석구석 씻기고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씻기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부위를 씻길 때는 빠른 속도로 비벼주고 고양이가 좋아하는 목 주변, 궁둥이 위쪽 등을 마사지해 안심시켜주며 씻겨주면 되겠다. 싫어하는 부위는 주로 항문, 발바닥, 아랫배 등이 있다.
고양이를 씻길 때 중요한 점은 '신속', '정확'이다. 오래걸리면 오래걸릴 수록 고양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커지고 정확하게 먼지가 붙은 부위를 씻겨주지 않으면 결국은 그 먼지를 먹게되기 때문이다. 또한, 샴푸가 몸에 남아 있는 경우 샴푸성분을 먹게되므로 물로 정확하게 씻겨주어야 한다. 몸 부위는 대체로 물로 씻겨주기 편하지만 얼굴은 자칫 귀에 물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씻겨야한다.
고양이의 경우 귀에 물이 들어가면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귀 주변을 씻길 때는 손에 물을 받아 샴푸성분을 없애주거나 뒷 목에 샤워기를 가까이 대고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해 얼굴 주변을 손으로 씻겨주면 된다. 씻길 때 얼굴 부위에 샤워기 물을 뿌리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며 자칫 고양이가 놀랠 수가 있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뒤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걸 얼굴에 뿌린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꼼꼼하게 잘 씻겨준 뒤 털을 잘 말려줄 필요가 있다. 우선 털에 무겁게 들러붙어 있는 물을 아래로 쭈욱 내려 제거해주어야 한다. 고양이가 아프지 않게 손을 이용해 몸과 발의 물을 짜주고 수건을 이용하여 젖은 몸을 닦아준다. 그 후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면 매우 깔끔하게 말려줄 수 있지만 고양이는 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대체로 헤어드라이기를 무서워한다.
만약 헤어드라이기를 써도 얌전한 고양이라면 집사는 천사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약한 바람을 이용하여 뜨겁지 않은 선선한 바람으로 고양이의 털을 잘 말려주면 된다. 안타깝게도 은비의 경우 헤어드라이기를 보면 기겁하며 도망가는 고양이이기 때문에 집사는 악마의 저주를 다시 한번 받았다. 집고양이는 따뜻한 곳이 많기 때문에 굳이 헤어드라이기를 이용하여 털을 말려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싫어하는 걸 두번하게되면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때문에 스스로 따듯한 곳을 찾아 그루밍하게끔 두어도 상관없다. 겨울에 이렇게 두기는 조금 걱정된다면 집안의 난방온도를 좀 더 올려주면 되겠다. 목욕이라는 지옥에서 나온 은비는 서둘러 따뜻한 곳을 찾아 헤매였다. 처음에는 노트북 위에 올라왔지만 집사의 호령으로 인해 서둘러 내려온 뒤 그 다음으로 따뜻한 밥통 위에서 쉴새없이 그루밍을 해댔다.
폭풍 그루밍을 마친 은비는 털이 뽀송뽀송하게 변하였다. 원래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털이지만 이 때는 정말 샴푸냄새가 가득하다. 걸어다니는 샤프란같은 은비는 온 몸을 그루밍하는데 피곤했는지 털이 다 마르자마자 뻗어버렸다. 이렇게 털이 다 마른 후에는 죽은 털이 상당히 많이 붙어있기 때문에 고양이용 빗을 이용하여 죽은 털을 제거해주면 더 좋다.
가까이 다가가서 털을 빗겨주려고 했으나 심기가 불편한지 은비는 나를 뚫어지게 처다보았다. 원래는 빗질하는 걸 좋아하는 은비지만 목욕한 이후로는 집사에 대한 반항심이 더 심해진다. 오지말라고 날카롭게 노려보는 은비를 무시하고 고양이용 실리콘 빗을 활용하여 죽은 털을 제거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죽을 털을 제거하려던 집사는 은비의 찹쌀떡 펀치를 한대 맞고 빗질을 포기하였다. 이처럼 고양이를 한 번 씻기려면 거사를 치루어야 하기 때문에 먼지나 곰팡이가 많이 묻은 경우를 제외하면 씻길 필요가 없다. 많은 분들이 '1년에 한번은 씻겨야 한다'라고 얘기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고양이를 씻기기 이전에 집 안을 좀 더 깨끗하게 유지하는게 더 중요하다.집 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면 고양이가 아무대나 돌아다녀도 안심할 수 있고 고양이를 씻길 이유도 없어지며 무엇보다 가족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
요약 정리
1. 고양이는 그루밍을 통해 냄새가 나지 않는 동물이며 씻길 필요가 없다.
2. 씻기는 경우는 '선택'이 아닌 '강요'이며 먼지나 곰팡이가 묻을 경우 씻겨주어야 한다.
3. 샴푸의 경우 굳이 고양이 전용 삼푸를 쓸 필요는 없으며 순한 제품을 사용해도 된다.
4. 고양이를 '신속', '정확'하게 씻겨야한다.
5. 고양이를 씻기는 경우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해야한다.
6. 집고양이의 경우 굳이 헤어드라이기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따뜻한 곳을 알아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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