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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오늘도 은비는 만사가 귀찮다

일요일 아침 은비는 습관화 되어있는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밥을 달라고 앞발로 쿡쿡 쑤시며 나를 깨운다. 주말에는 조금 늦잠자고 싶은데도 은비 덕분에 주말 아침도 일찍일어난다. 이는 나름 좋은 점이라고 생각되어 일어나 은비에게 밥을 준다. 하지만 밥을 냠냠 맛있게 먹고 난 은비는 다시 잠을 잔다는게 문제다.


은비만의 특이한 점이기도 하지만 밥을 먹지 않은 상태로는 절대 잠을 자지 않는다. 사람은 먹자마자 바로자면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데 고양이는 그런게 없나보다. 먹자마자 돌아보면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아침에 6시쯤 밥을 먹고 다시 잠을 자고 12시쯤 점심먹을 때 은비도 일어난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12시 이후에 밥을 먹기 때문에 나는 은비를 밥주고 아침을 혼자 먹는다. 점심 먹을 준비를 마치고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있으면 은비도 밥을 달라고 울기 시작한다.


그래도 안 주면 싱크대에 올라가곤 하는데 내가 볼 땐 주인의 반응에 대해 잘 알고 있는거 같다. 싱크대에 올라가면 이상한 걸 주서먹겠다는 은비의 판단이 기가막히다. 은비 나름의 밥 주라는 귀여운 협박인 느낌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가족들이 점심을 먹으면 자기도 밥을 달라고 한다.


분명 몇 분 전에 밥을 먹었어도 가족들이 점심을 같이 먹고 있으면 반드시 은비 그릇도 챙겨줘야한다.

배부른거 뻔히 아는데도 달라고하는 점이 신기하다. 막상 주면 몇 번 할짝대고 다른 곳으로 슝~ 가버리곤 한다.



우리집 아래는 상가건물인데 어제 폭우로 인해 물이 샜는지 우리집쪽에 공사가 들어왔다. 집주인 아저씨와 수리공이와 이것저것 보더니 우리집쪽에 흐르는 관이 노후됐다고 한다. 그래서 공사를 시작하는데 생전 처음보는 아저씨들이 들어오니 은비가 놀래서 커튼 뒤로 숨었다.



이상한 기기와 각종 소음들이 들리자 놀랜 듯 보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은비도 역시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처음보는 물건과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커튼뒤로 숨었지만 다 보일 정도로 숨는 실력이 좋지 않다. 


대표적인 숨는 장소는 커튼 뒤, 침대 아래, 이불 속 정도인데 가끔보면 이불속에 숨을 때는 얼굴만 이불에 박고는 다 숨었다는 것마냥 가만히 있는 경우도 있다. 뒤에서 궁둥이를 만지면 펄쩍 뛰면서 놀라곤 한다.



공사 아저씨가 익숙해졌는지 나와서 이것저것 냄새를 킁킁 맡곤 사람들을 처다본다. 게다가 공사로 인해 싱크대 쪽 구석이 많아져서 그리로 들어가려고 한다. 고양이의 공통적인 특징사항인 구석을 좋아하는 건 은비도 똑같은거 같다. 상자, 서랍 속 등 새로운 구석이 생기면 알아채기도 전에 이미 그 곳에 은비가 있다.


일반적인 공사면 그대로 두었을 텐데 각종 쇳가루와 다칠 수 있는 공구들이 있었기에 안방으로 데려갔다. 고양이의 호기심이 자칫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분들은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집 고양이만 그러는 진 모르겠지만 은비는 아이컨텍을 피하지 않는다. 예전에 동물관련 책을 읽었을 땐 동물은 눈을 서로 마주하면 공격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는데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은 예외인거 같다. 오히려 유심히 처다보기 바쁘다.


 


무언가를 원하거나 배가 고플 때는 더 간절하게 처다보는 것 같다. 특히 이렇게 처다보면서 울어대면 100퍼센트 배고프다는 신호다. 간혹 안 주고 무시당하는 경우 컴퓨터 위에 올라와 방해를 하거나 내 팔을 자기 발로 꾹꾹 누르면서 달라고 한다.



공사판 볼꺼 다 보고 날씨가 더워져 은비도 들어누웠다. 요즘은 잘 때 온도가 높기 때문에 배를 들어내고 자곤 한다. 자는 걸 보고나서 나도 티비 좀 보며 휴식을 취하려는데 리모콘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침대 아래도 찾아보고 심지어 공사아저씨에게 물어봤지만 도통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은비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드는 순간 은비 엉덩이 아래에 무언가 검은 물체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은비 엉덩이 아래에 리모콘이 있었다. 살짝 보여서 다행이지 안보이 듯 완전히 가렸다면 티비도 못보고 혼자 주말에 멍때리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엉덩이 아래에 리모콘이 있었다. 배를 들어내고 고양이팔자 상팔자처럼 자는 건 좋지만 리모콘까지 숨겨서 집사의 휴식을 방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은비는 엉덩이쪽을 만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리모콘 꺼내는데 자꾸 발로 걷어차서 살짝 열이 받았다.


리모콘과의 사투를 마친 후 티비를 보며 쉬고 있는데 은비도 앉아서 가끔 티비를 보곤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앉아 있는게 엄청 신기해서 사진을 마구 찍었지만 지금은 그냥 일상처럼 그려러니 하고 있다. 이렇게 앉아서 멍때리거나 티비를 틀었을 때 새나 동물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면서 보곤 한다.



앉아있는 자세도 굉장히 안정적이며 뒤에서 보면 진짜 사람이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손은 자유롭지 못한듯 팔을 들어올리면 뒤로 고꾸라지곤 한다. 고양이가 앉아 있으려면 어느정도 살이 붙어있어야된다고 하는데 은비는 비만이 아님에도 이렇게 앉아 있는다. 내가 볼 땐 아래쪽 근육이 좀 발달되어 있나보다.


이렇게 앉아서 티비 한프로를 보고 1시가 지나가니 날씨가 더 더워졌다. 습하고 날씨가 덥다보니 은비도 여름을 탄다. 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점들이 많다. 여름에 창가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점이나더운데 굳이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으로 볼 때 여름을 타는게 아닌 만사가 귀찮아서 그러는 거 같다. 오늘도 은비는 그저 만사가 귀찮아서 또는 놀거리가 없어서 늘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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